24.12.08

KOJICA (KOICA-JICA) 크리스마스 콘서트

드디어 여름때부터 생각해왔던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열게 되었다.
콘서트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내의 집에서 열기로 했다.
시내의 집에 피아노가 있었고 집도 넓었기 때문에 콘서트를 열기에 적당했다.
이른바 하우스 콘서트였다.
콘서트를 위해 몇 일전부터 시내의 집에서 리허설과 연습을 했다.

나는 연주할 피아노 곡으로서 Marble Halls와 바흐의 Minuet을 준비했다.
대학때 랩 공연은 여러번 해봐서 사람들 앞에 서는게 낯설지 않지만 피아노를 사람들 앞에서 치는 건 어렸을 때 이후 처음이라 긴장이되었다. 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연습을 많이 했어야 했다.
공연 안내 팜플렛을 내가 엑셀을 이용해 만들었다.
처음으로 JICA와 KOICA가 합심을 하여 하는 공연인데 진짜로 콘서트 분위기가 나게 하고 싶었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코이카와 자이카의 우정이 돈독해졌으면 한다.

사람들은 각자 음식을 준비해와서 식사를 한 후에 콘서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자이카의 아키미상은 돼지고기를 푹 고아서 양념과 함께 장조림 처럼 한 음식을 준비해왔는데 정말 맛있었다. 다들 이 요리의 비법을 캐 묻는라 난리였다.
나와 시내는 계란말이를 준비했고 각자 너무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 왔다.

식사를 하면서 약간의 맥주와 술도 오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자이카의 사또르상이 생일이여서 더욱 뜻 깊은 날이었다.
최선생님 사모님이 직접 만드신 케익이 준비되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첫번째로 내 순서였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하는게 나을 것 같아서 순서의 맨 앞에 나를 배정했다.
피아노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서 경청을 시작했다.
나는 처음 곡으로 MarbleHalls를 쳤고 다음으로 미뉴엣을 쳤다.
실수를 하는 바람에 연습때 보다 훨씬 못 한것 같아 아쉬웠다.
어쨋든 좋은 경험이었다.
구 선생님은 눈의꼿을 직접 반주와 함께 노래를 하셨다. 1절은 한국어로 2절은 일어로 노래를 하셔서 반응이 좋았다.
사또르상은 하모니카로 캐롤 송을 준비해왔다. 서투른 연주의 모습이었지만 연습의 성과가 서서히 보이면서 좋은 반응을 보였다.
사또르상 연주가 끝나자마자 케익 전달식을 했다. 초 불을 끄면서 일단 마무리 했고 연주회를 이어갔다.
소노꼬상은 시내의 연주에 아베마리아를 불렀는데 목소리가 아름다웠다.
최선생님은 트럼펫 연주와 사모님의 피아노 반주에 노래를 하셨다.
찬규가 박수를 치면서 모처럼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걸맞는 가족적인 모습이 연출되었다.
아키미상은 간단한 트럼펫 연주를 했다. 확실히 연습을 오래한 티가 났다.
다음으로 시내와 나의 연탄곡이었다.
연탄곡은 피아노를 두명 연주하는 곡을 말하는데 완벽한? 호흡으로 최상의 연주를 보였다.
연탄곡 하나를 마치고 내가 노래를 했다.
이재훈의 한장의 추억을 시내가 반주하면서 내가 노래를 했다.
마지막은 대망의 트럼펫 3중주였다.
오따상과 아키미상, 최선생님이 준비한 트럼펫 3중주로 멋진 연주였다.
트럼펫 10년 연주의 오따상은 확실히 깨끗한 음을 불면서 단연 돋보였다.

연주회가 끝나고 다시한번 과장와 음료, 맥주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콘서트는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내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이런 좋은 자리를 이어갔으면 한다.

26.9.08

두번째 씨하눅빌 여행

나와 동기인 동료단원 4명은 함께 씨하눅빌(캄보디아 명칭 깜퐁싸옴)로 가기로 했다.
씨하눅빌은 동남아시아에서도 유명한 해양 휴양지로서 아직 개발이 덜 되어 순수함이 묻어나는 해변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지난 6월 초, 현지교육 기간, 단원 기관 투어때 들른 바 있다.
그때 씨하눅빌의 이미지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에메랄드 바닷물과 끝없는 수평선 위에 유화 붓으로 공들여 그린 듯한 구름들은 천국이라는 표현이 과하지가 않을 정도였다.
특히 밤바다와 별들이 쏟아져 땅에 떨어질 것만 같은 하늘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씨하눅빌은 캄보디아의 서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프놈펜에서 버스로 4시간 가량 걸린다.
씨하눅빌에는 동기 누나가 근무하고 있어서 함께 하기로 했었다.

나와 동료단원들은 프놈펜에 먼저 모여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씨하눅빌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씨하눅빌까지는 4시간이 살짝 넘게 걸렸다.
버스 타는 것이 이젠 익숙해져서 그런지 장시간 버스를 탔어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시속 300km까지 나오는 고속 열차도 있는 그 좋은 한국에서는 왜 실컷 여행을 안했는지 후회가 든다.
씨하눅빌에 도착하자 씨하눅빌 단원인 ej누나가 반겨준다.
우리는 먼저 ej누나 집으로 간다.
일단 ej누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로 한다.
다음날 아침에는 밤부 아일랜드로 가는 패키지 상품이 예약되있다.
이 패키지 상품에는 아침, 점심식사에 스누쿨링과 낚시까지 포함되있는데 15불 밖에 안하는 환상의 상품이라 하겠다.
일찍이 씨하눅빌에 가면 꼭 이 패키지를 이용하라는 선배단원의 말이 있어서 기대가 컸다.

다음날 아침.
불행하게도 하늘은 우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우기여서 비가 많이 올 수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비가 오니 아쉬움이 컸다.
우리는 훗날을 기약하며 패키지 상품 예약을 취소했다.
그리고는 일단 아침 늦게 까지 잠을 자고 비가 그친 오후에 바닷가로 향했다.
우리는 외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쏘카 해변으로 갔다.
쏘카 해변은 역시 깨끗한 바닷물과 아름다운 절경을 과시했다.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
우리는 수영복으로 세팅을 마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구름이 많이 껴있는 상태여서 바람도 살짝 불고 파도도 약간 세게 쳤지만 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시원한 바다물을 마음껏 즐겼다.
3시간 정도 놀다가 비가 오기 시작하여 우리는 짐을 싸서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점심은 Happy Herb Pizza집으로 향했다.
이 집은 Happy pizza라는 메뉴가 있는데 여기에는 마리화나를 소량 넣는다고 하여 유명하다.
캄보디아에서는 마리화나가 불법이 아닐것이다.
내가 알기로 마리화나는 중독성이 없어서 마약으로 지정하지 않는 국가도 있다고 한다.
그런점에서 보면 담배는 정말 심각한 마약이다. 기업들의 로비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중독되 있어서 마약으로 지정이 안됐을 뿐이다.
어찌됐든 우리는 이 피자집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시켜먹었다.
해피 피자는 향이 확실히 색달랐다. 그리고 약간의 쓴맛도 느껴지는 듯 했다. 맛은 그야말로 그저 그랬다.
기분도 happy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 마리화나를 식용에 쓴 피자를 접했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겠다.

다음날 우리는 다시 프놈펜으로 향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제대로 놀지도 구경도 못했지만 씨하눅빌 동기 단원이 생활하는 모습도 보고 오랜만에 여러 단원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8.9.08

KOICA, JICA, WFP, NGO 멤버들간의 저녁 식사

내가 출근하는 기관에 신규 JICA단원이 곧 들어왔다.
JICA (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는 KOICA와 마찬가지로 국제협력기관이다.
나와 S는 신규 JICA단원인 후키미상과 알게되었고 바로 옆기관에서 근무하는 또다른 자이카 신규단원 사또르상도 알게되었다.

어느날 후키미상이 미국 NGO단체에서 일하는 사람 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말했다.
각자 음식을 조금씩 준비해서 가기로 했다.
나와  S는 파전을 준비해서 JICA단원인 소노꼬상집으로 갔다.
소노꼬상은 1년째 근무하고 있는 자이카 단원이다.
소노꼬상 집에서 후키미, 사또르상을 만나서 함께 미국인 집으로 향했다.

그 미국인은 Jessica라는 여자였는데 KAPE라는 NGO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캄보디아에 온지는 약 6개월정도 였다.
Jessi는 내 기관과 아주가까운데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현재 하는 프로젝트는 컴퓨터 lab을 만들어주는 프로젝트인데 그 프로젝트와 관련된 각종 비디오 자료를 만들고 사무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구글에서 마케팅부서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미국인 특유의 활달함과 발랄함이 돋보이는 여자였다.
이 곳에는 Jessi 말고도 중등사범에서 일하는 PISCO단원 John과 WFP에서 일하는 남자(이름 까먹었다)도 있었다.
미국인 3명과 일본인 3명, 한국인 2명이 모여서 식사를 하게 된것이다.

Jessi가 준비한 음식은 소스가 맛있는 닭요리였다.
자이카 단원은 고로케, 김밥등 꽤 여러가지를 준비해왔다.
우린 파전만 준비해온게 웬지 쓸쓸히 느껴졌다.
우린 서로가 준비한 음식을 설명했고 식사를 하면서 서로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일, 여행갈 만한 곳, 기타 각 나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여러 나람들과 함께 식사해 본적은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영어 스피킹도 하니 좋았다.
역시 미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도 느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일본 음식에 손이 더 가는 것을 느끼면서 무언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인데.
흠 .. 영어 공부도 더 해야 겠다.

11.7.08

홈스테이 기간 (기관근무, 집구하기)


7주간의 교육이 끝나기전 3주간은 홈스테이 기간이다.
홈스테이는 내 파견지역인 깜퐁참에서 기관과 가까운곳에서 하게 된다.
홈스테이는 코이카 사무실과 파견기관이 얘기를 하여 정하게 된다.
내 홈스테이 집은 선배단원이 홈스테이를 두번이나 했던 곳이었다.
다행히도 홈스테이 경험이 있는 집이었기에 나에게도 친절했으며 무엇보다도 홈스테이 개념이 무엇인지 아는 분들이었다.
다섯 가족이었는데 초등학생 남자 한명과 대학생 딸 2명이었다.
나는 최대한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고자 이야기를 많이 하고자 했다.
캄보디아어가 익숙하지 않기에 의사소통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막내와 맏이와 얘기를 많이 했는데 언어가 서로 안통할때는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홈스테이집에서 가장 고역은 밥먹을때였다.

한 포스하시는 애들 아버지는 목소리도 조용하시고 점잖으신 스타일에 말수가 적으셨다.
나는 '록 뿌'라고 부르는데 이는 한국말로 하면 삼촌이라는 표현에 존칭을 더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록 뿌는 깜퐁참 지역 개발 기관에서 일하신다.
홈스테이 기간에는 기관근무를 시작하는 시점이며 집도 구하기 위해 알아보는 기간이다.

기관에 출근을 시작하면서 기관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기관은 PTTC(Provincial Teacher Training Center)로 초등교육사범기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이곳에서 컴퓨터 수업을 맡게 되는데 Microsoft Office를 가르칠 예정이다.
이 기관에는 이미 컴퓨터 선생님이 한 분 계시는데 워드를 매우 잘하셨다.
솔직히 말해 나보다 더 많이 아는 듯 하다.
내 실력이야 이리 저리 헤매면서 하는 스타일이지 정식으로 워드를 배워본 적은 없다.
어쨌든 여기서 내가 도움이 될 일을 찾아봐야겠다.

홈스테이 기간 3주 동안 렌트할 집을 알아보기 위해 동료단원 S와 함께 집을 구하러 다녔다.
자전거를 타며 일일이 '쭈올 프떼아' 라는 문구가 적힌 집은 다 들어갔다.
하지만 렌트할 집도 구하기 쉽지않지만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란 더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홈스테이 집 아주머니의 소개로 시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집을 렌트하기로 계약을 했다.

10.7.08

그 동안의 이야기들


2008년 2월 KOICA 합격 소식을 받는다.
그리고 3월에 4주 군사훈련을 시작한다. 
군사훈련이 끝난 후 주말, 이틀을 쉬고 코이카 교육을 받기 위해 이천으로 내려간다.
이천에서 5주의 언어 교육, 봉사 활동에 관한 교육, 기타 교양 강좌를 듣는다.
이천에서의 훈련이 끝난 후 재수없게도 캄보디아 팀은 1주일 뒤로 출국이 잡혀있다.


캄보디아 ?
캄보디아는 인구 1300만명의 입헌군주제 국가다.
현재 씨하모니 국왕이 있고 훈센 총리가 실질적으로 국가를 다스리고 있다.
캄보디아는 라오스와 더불어 최빈국가로 속하는 국가로 선진 국가의 지원과 NGO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의 남서부에 있는 나라로, 1863년 프랑스의 보호국이 된 이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가 되었다. 1940년 일본에 점령되었고 일본 패전 후 1947년 5월 프랑스연합 내의 한 왕국으로 독립을 획득하였으며, 1953년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캄보디아는 1975년에 겪은 일명 킬링필드로 유명한 동족 대학살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폴포트(Pol Pot)가 이끈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 시절에 잔인하고 무자비한 반대파 학살이 이루어져 15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캄보디아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비록 직항편이 있지만 직항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수하물의 무게 때문이다.
직항을 이용할 경우 무게 제한이 너무 낮아서 태국의 방콕을 경유해서 간다.
우리는 한국 - 홍콩 공항에서 잠시 대기 - 태국 - 캄보디아의 경로를 거쳤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저녁이어서 주위는 어두웠다.
일전에 코이카 단원의 블로그에서 본 프놈펜의 첫인상을 떠올리면서 황무지를 연상했지만 지금의 프놈펜은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유럽풍의 건물들과 멋들어진 집들이 눈에 띄었다.
후진국의 후진? 모습만 떠올린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광경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캄보디아에 도착하고 프놈펜에 있는 유숙소에서 바로 7주간의 언어 교육 및 캄보디아 문화 체험에 대한 수업이 시작된다.
아 .. 참. 각 파견국마다 수도에 코이카 유숙소라는 것이 있다. 
이 곳 유숙소에서 신규단원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본래 유숙소의 목적은 단원들이 수도에 들렀을때 편히 쉴 수 있게 함이다.
캄보디아의 유숙소는 프놈펜에서도 부자동네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건물과 시설이 매우 좋았다.
특히 캄보디아 특유의 높은 천장과 휘황한 장식들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형식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이 곳에서 집중적인 언어교육을 받았다.
언어교육은 왕립 프놈펜 대학의 현지인 교수들이 와서 수업을 하는 형식이었는데 수업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오히려 공부의 흥미를 떨어뜨렸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주변 까페에 가서 커피나 맥주를 마시면 된다.
프놈펜에는 외국인을 상대하는 까페나 음식점이 많아서 예쁜곳이 많이 있다.


언어교육이 끝나고 본격적인 기관파견이 시작된다.